2007년 04월 29일
골방
우리는 성서에서 골방이 의미하는 의미를 잠시 몇 가지나마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엘서 2장 16절에서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라고 말씀하실 때 신부의 은밀된 방이 골방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6장 5절이나 역대상23장 28절, 느혜미야 10장 37절, 13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 안에 있는 골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평범하게 우리가 살고 있는 방보다는 더 은밀 되게 숨겨진 방. 보통 사람들이 그냥 많이 드나드는 곳보다는, 관심을 두는곳보다는 더 은밀 되게 들어간 곳. 그래서 주님의 백성이면 이러한 곳은 다 있어야 될 것으로 말씀하는, "내 백성아 갈지어다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으로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란 이사야 26장의 말씀처럼 주님의 백성이라면 주님과 나사이에 은밀되게 들어가야 될 곳이 있는 주님과 나만의 그러한 시귐의 곳.
우리의 생활 속에 가장 소중한 보배와 귀중한 물건들을 숨겨 놓는 곳이라 할 수 일는 그러한 골방.
누구나 쉽게 드나들지 않는 곳.
그래서 주님과 나만의 곳이라 말할 수 있는 이 골방.
참으로 우리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에서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에 아버지께 기도 하라"고 말씀하실 때, 우리 각자에게는 나만의 골방이 다 있음을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 각자가 나의 주님께 속하여서 나의 주님을 진정한 내 온 마음에 사랑의 주님처럼 모셨다면 그래서 주님께 속한 유다처럼내 온 영혼이 주님과의 사귐을 정말 기뻐한다면, 우리 모두에게는 어느덧 주님과 나만의 골방이 있을 줄 압니다.
그곳이 우리 예수님의 날마다 변화되는 그러한 생활이지만 아버지만을 만나기 위하여서 한적한 곳을 찾아 아버지와 사귐의 시간을가졌던 것처럼 그러한 한적한 곳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또 우리 각자가 삶을 꾸려 가는 그러한 가까운 곳에서 조용하게 주님 앞에나이가서 기도하는 곳도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보이는 유형의 장소는 아닐지라도 날마다 변화되는 생활 속에서 주님께서아버지와의 사귐만은 가지셨던 것처럼, 우리가 아버지께 나아가 가져보는 이러한 사귐만은 각자가 가지고 있어야만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나의 주님께 돌아와서 이제는 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나의 마음의 가장 소중한, 그러한 마음을 가진 그의백성이라고 한다면, 성전에 골방이 딸려 있듯이 우리 각자에게 그러한 골방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하나님을 섬기는 그러한 일과들은 다를지 몰라도 우리 모두는 은밀하게 주님과 나만의 갖는 골방의 삶이 없다면 우리는 그러한 섬김가운데서 쉽게 지치고 말 것 같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평범한 생활, 가족들과 만나는 수많은 일과들 가운데서도 가족의일이 나의 일이 될 수 있는 그런 많은 일들 가운데서도 우리 영혼이 지치지 않은 것은 골방이 있기 때문이며, 우리 영혼이 지치지않는 것은 골방이 있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그 수 많은 일들 가운데서도 우리 영혼이 생기 있게 설수 있는 비결은 골방이 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러한 골방이 있는 자는 언제나 참된 삶의 부요를 가지고 살 것 같고요,나아가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일들을 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약속하심을 먼저 힘입는 은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정말 골방의 삶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더 갖가지 모양으로 다가온다면 우리는 골방 속에서 주님과 나만의 관계를 더 새롭게, 강하게, 온전하게 묶어 정돈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아간 생활 가운데서라도 주님과 나만의 관계가 뚜렷하게 이루어져 와서 하나님을 예배하듯 살았으면 참 좋을 것 같고요. 주님과 동행하듯 살았으면 참으로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참으로 윤택한 삶을 얻기 위해서는 이러한 골방을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생각하며 찾아보아야만 될것 같습니다. 골방이 없는 성전, 골방이 없는 집, 그것은 참으로 초라한 삶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오늘 나의 주님을 가까이하는 가운데서 이러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골방을 우리 각자가 나의 골방으로 찾아야만 될 것 같습니다.
주께서 은혜 베푸시는 이 귀한 시간, 주께서 우리를 이러한 만남 속에 인도하시고자 하는 시간, 여러분이 나아가서 의롭게 살고 더나아가서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그러한 삶을 살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함이라면 마태복음 6장말씀처럼 나의 골방 안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먼저 있어야만 될 것 같습니다. 내 영혼이 수 많은사람들 잎에 서 있지 아니하고, 참으로 내 영혼이 가련하게 그런 벌거벗은 자처럼 살지 않기를 원한다면 먼저 나의 골방에 들어가서나의 영혼이 내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이가 그분을 나의 가까운 아버지로 나의 하나님으로 가까이 불러 볼 때에, 하나님의가까우심이 여러분에게 놀라운 축복이 될 것이며, 이러한 은혜를 옷 입고 나아갈 때에 수많은 사람이 우리 곁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앞에 있다는 마음이 참으로 많을 것 같습니다.
마치 사도행전 4장 말씀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이 붙들려 제사장 앞에 이끌려 갔지만, 그들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 있다는 이 자유로움 속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증인된 마음으로 우리 주님을 증거했던 것 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이란 것과 나의 주님과 함께라는 것이 참으로 가깝다면 대적들 앞에서도 우리 영혼이 강하고 담대하며영광스럽게 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골방을 통해서 새롭게, 강하게, 온전되게 정돈해 보았으면합니다.
다윗의 골방
우리가 처음 사무엘상 16장에서 만날 수있는 다윗은 들판에서 양떼 지키고 있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주님과 가까운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을 그 어린청소년 때에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눈앞에는 특별한 소년으로 보이지 않았을지 몰라도 주님을 참으로 가까이 하는그래서 사자와 곰도 도렵지 않는, 그래서 주님과 함께 성실하게 양떼를 지키고 있는, 주님이 그의 영혼 속에 기쁨이 되고 주님께이끌림 받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다윗임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불렀을 때 곧 달려와서 아버지앞에 서는 모습을 보아도, 아버지가 심부름을 보내었을 때 형들을 위해서 전쟁터에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즉시 민첩하게순종하는 모습을 보아서도 그는 하나님과의 가까우심 속에 살고 있는 소년이었습니다.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영혼을지켜볼지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기름부음을 붓고 싶은 그러한 소년이었습니다.
아니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될 것같습니다. 사무엘을 통해서 뚜렷이 보이게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것 이전에, 다윗이 주님을 가까이 하고 주님 은혜를마음속에 구할 때에 주님은 그의 영혼 속에 참으로 기름부음으로 많이 응답해 주셨을 줄 압니다. 그래서 다윗의 영혼이 맑았고지혜로웠고 용감하였을 것 같습니다. 다윗의 마음속에는 주님으로 말미암은 지혜로움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으며 하나님 보시기에아름다운 일들이 많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사실 다윗이 들판에서 홀로 양떼 먹이는 그일 자체가 하나님앞에 가까이 와 있는 참 좋은 삶이었습니다. 사람들과의 많은 대화보다는 주님을 가까이 하는,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마음에불러보는, 어느덧 주님은 그의 마음속에 벗이 되어 있는, 이 놀라운 생활 전체가 다윗의 진정한 삶이었습니다.
어쩌면 베들레헴 사람들을 만나기 앞서서, 자기 집에 있는 육신의 부모님들과 형제들을 만나기에 앞서서 다윗은 양떼들 먹이는 것 같아 보여도 그 들판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은 그에게 온전된 하나의 삶이었습니다.
그가 주님을 부르면 주님은 그의 마음에 참으로 가까웠겠고 주님은 그의 마음속에 더 없는 큰 기쁨이었으며, 그래서 어느덧 사자와곰이 그에게 닥쳐올지라도 함께 하시는 주님이 담대함의 근원이었음을 그는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마음속에 있던다윗이 어느날 골리앗을 볼 때 두렵지도 않고 골리앗을 향해 나아갈 용기 있는 것은 다윗이 언제나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을 살고있었기 때문임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양때 먹이는 생활은 어떤 의미에서 세상에 드러나 있는 삶은아닙니다. 그러한 생활 전체가 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골방의 삶이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윗이 베들레헴 동네에드러나거나, 전쟁터에 드러나서 골리앗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은 드러난 삶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블레셋의 수많은사람들도, 이스라엘 왕과 수많은 사람들도, 눈여겨보는 그 앞에서 다윗은 주님과 함께란 자유로움을 가지고 전투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다윗의 골방은 좁다란 하나의 골방만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가까이 지내고 있는 그 베들레헴 들판의 생활 전체가다윗의 골방이라 말해야 될 것만 같습니다. 이 다윗의 골방은 참된 마음으로 주님을 가까이 하는 다윗에게 있어서는 큰 축복이었을것 같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러한 자에게 오늘도 변함없이 가까운 주님으로 다가와 주실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말씀에서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날도 저 베들레헴 들판에서 밤중에 양떼를 지키는 그 목자들에게 천군 천사들이나타나 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 것 없는 것 같아 보이는 그러한 곳이지만 주님 앞에 양떼를 모아 놓고 조용히 하늘바라보며 주님을 묵상하며 주님 향하는 그러한 마음속에 주님의 임재하심은 참으로 가까울 것 같습니다. 집보다 훨씬 더 넓은광활한 광야일지 몰라도 그곳은 주님을 가까이 모시는 골방이라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 예수님의골방이 어두운 밤에 저 빈 들판에 나아가서 기도했던 곳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골방은 꼭 좁다란 장소만을 가리키는 것이아니라 내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나의 주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그러한 은밀된 곳임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만 될 것같습니다.
사무엘상 18장에서 다윗은 이제 왕궁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그는 백성들 앞에 드나들게 되었고마침내 점점 왕의 사위가 되어감을 보게 됩니다. 그의 삶은 사람들 앞에 많이 드러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때 다윗의이렇다 할 결점을 찾기는 어렵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그러한 삶 속에 머물러 있기를 기뻐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는마침내 사울왕의 핍박 때문입니다만 다시 한번 광야로 이끌려 가게 됩니다.
사무엘상 21장과 22장에서 읽어볼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웃나라 왕 밑으로 피난 가 있는 다윗에게 선지자 갓을 보내어서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땅으로들어가라"는 말씀을 읽게 됩니다. 다윗은 유다땅으로 돌아왔습니다만 그가 머물 수 있는 곳은 유다 수풀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드러난 다윗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안에 숨는 다윗이었음을 주목해야만 할 것같습니다.
낮에도 동굴 속에 숨어 있던 사무엘상 24장 말씀처럼, 그가 밤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의지하는 그 믿음 속에 살던사무엘상 26장 말씀처럼, 궁핍과 가난한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 있는 그 선한 양심과 깨끗한 마음 때문에 훔치지 못했던 사무엘상25장 말씀처럼, 다윗은 참으로 주님 안에 숨는 마음과 주님 가까이 의지하는 마음과 주님을 끊임없이 기대하며 순종하는 마음으로서 있는 것이 다윗의 인격속에 차츰차츰 익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게 장차 다윗을 온 유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세울 것입니다. 그의 생활은 드러나 있는삶입니다. 그에 앞서서 하나님께서 참으로 다윗에게 원하시는 바는 주님 안에 숨고, 주님 얼굴 바라보며 살고, 주님을 의지함으로살고 주님의 인도하시는 빛 가운데서 행하는 그러한 다윗으로 형성시키고자 사무엘상의 그 핍박 가운데서 역사하고 계심을 불 수있습니다. 다윗을 이기게 만들어 주셔도 숲숙을 떠나게 만들지는 않으시는 주님이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이 진정한골방을 주시고자 주님과의 이 골방된 사귐을 인격속에 형성시켜 놓고자 힘쓰시는 주님을 이해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다윗이 다음에 왕위에 올랐을 때 그의 나이가 30살 될 때까지 거치른 광야의 그 어려움을 지나온 것 가운데서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이 무엇이라 말해야만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보물창고였을 것 같습니다. 어느 의미에서 신부가 참으로 신랑만을 사랑해서 들어가는골방처럼 나의 주님과 나만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골방이라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곳에 가까이 갔을 때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예배하는 성전으로 가까이 접근해 갔다라고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서 골방의 의미를 이러한 곳에서 찾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한 골방을 가까이 할 때에 주님은 다윗의 마음속에 참으로피난처가 되어 주셨으며, 의지하는 가까운 주님이 되어 주셨으며, 빛이 되어 주셨으며 다윗으로 하여금 나아갈 바를 비춰주시는참으로 좋은 상담자가 되어 주셨음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골방을 우리 각자가 새롭게 간직하는 것이 참으로 필요할 것같습니다.
다윗이 왕위에 앉아서 비록 그러한 외부적으로 쫓기는 어려움과 곤란이 없어서 어느덧 그 왕위에주저앉아 버렸을 때 그는 골방을 잃어버린 자였습니다. 골방에 들어가지 않은 자였습니다. 그러할 때 그의 영혼은 말라있었으며, 하나님의 빛이 없었으며 그는 도리어 참으로 주님과의 만남을 빼앗긴 자로서 부끄러움과 수치만을 보이는 그러한 다윗이되고만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골방에 들어가서 나의 주님을 가까이 하는 이 가까운 관계를 가지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것인가를 다윗의 일생을 통해서 잠시나마 정돈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님과 나만이 가지는 이 골방, 우리 각자에게 정말새롭게 정돈되어야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창세기에서 읽어 볼 수 있는 야곱의 그 생활가운데서 가장 그의 영혼이 밝고 그리고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축복스러운 야곱을 보여 준 때가 언제입니까? 그의 청년 때도,장년 때도 아니며 연로한 가운데서 이 땅을 떠나기에 앞서 있는 그러한 야곱이 하나님 앞에 가장 축복스런 야곱으로 드러나 있음을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나에겐 나의 골방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러한 마음 상태를 가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사랑스러웠던 라헬은 이 땅을 떠나갔고 요셉은 빼앗겨 버렸으며, 베냐민은 잃어버림을 당한 야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애굽의 바로왕 앞에 섰을 때는 험난한 나그네길을 걸어간 자로서 자기를 고백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야곱이업습니다만,참으로 마음으로부터 주님을 가까이 해 갈 때에 비록 몸은 노쇠했지만 영혼은 참으로 서 있는 야곱이었으며,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알아 볼 수 있는 야곱이었으며, 주님의 마음을 좇아 자기의 손자 에브라임과 므낫세 위에 축복할 수 있는 그러한 야곱이었음을주목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열 두 아들에 관해서 다가올 일들을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예언하듯말씀할 수 있는 참으로 축복된 자였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주님과의 관계점 속에서 주님 안에 그리고 주님과의 사귐속에 잠겨 있을때, 비록 거동하기에 불편한 연로한 몸이지만 그의 영혼은 주님을 온 마음으로 가까이 하고자 할 때에, 주님은 그 야곱의하나님으로 서 주셨음을 우리는 알아야 될 것 같습니다. 그의 온 마음이 주님께 돌아와서 마음으로부터 주님을 가까이 하는야곱. 그러한 야곱으로 주님께 매여갈 때 야곱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이는 오늘 삶이 아니라 주님과 나사이는 참으로 '골방 같은 진정한 사랑의 사귐이 있다'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엘리야도 그러합니다.
그가 열왕기상 17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주님께 매여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 누구도, 인적이 없은 그릿 시냇가.
그곳에서 내일을 알지 못한 삶 가운데서 주님과의 사귐속에 매여 있는 엘리야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그릿 사냇가를 엘리야의골방이라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가 얼마동안 시간을 보내고 난 이후에 다시금 보냄 받은 곳 사르밧 과부댁을 생각해보십시오. 그의 마음이 언제나 매여 있어서 함께 살고 있는 분 주님이셨습니다.
그는 주님과 함께란 삶속에서 밤낮 깨어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엘리야의 골방이라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한 삶이 참으로피곤하게 그리고 무의미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주님과 함께란 그러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러할 것 같습니다. 갈멜산에 나아간엘리야가 그 놀라운 하나님의 종으로 수많은 사람들 앞에 생기있게 설 수 있는 것은 은밀한 골방의 생활인 그릿 시냇가나 사르밧과부댁의 그러한 삶 속에서 철저하게 주님께 매임 속에 살았던 엘리야였기 때문에 그러할 것 같습니다.
엘리야에게는 이 골방적인 삶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이 골방의 삶으로 쉽게 돌아가지 아니할 때 이스르엘에서 나약한 자로 드러나고 말았고, 로뎀나무아래 누워있는 연약한 엘리야를 보게 됩니다. 그의 근복적인 이유는 골방이라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쉽게 조그만 문제와 소문에 누워버린 그리스도인. 그리고 평벙한 이방인들보다 나을 바 없는 그러한 삶 속에 참으로 연약함속에 있는 그리스도인. 근본적인 이유는 그릿 시냇가나 사르밧 과부댁에 있던 엘리야처럼 주님과 나만의 삶이라 말할 수 있는골방을 갖지 못했을 때, 이 철저한 골방을 갖지 못했을 때, 강함 속에 사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부끄러움이 없는 자가아니라 유약한 자로 드러나고야 말 것 같습니다.
엘리사의 삶을 보십시오.
그가 주님을 따라 살았던 그 강인한 삶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모습만 잠깐 생각해 보십시오.
열왕기하서 13장에서 요아스 왕이 그에게 다가와서 그를 향하여 참으로 아버지여! 라고 부르짖으며 이제 병든 가운데서 마지막으로 이땅을 향해 길가고 있는 그 엘리사를 향해 울 그 때에도 엘리사는 결코 나약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강함 속에 머물러있는 엘리사임을 우리는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요하스 왕에게 전달해 주었으며 요아스왕이하나님의 축복에 못 미치게 행하여 갈 때 왕을 쏘아볼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자였습니다. 단순하게 몇 마디 말을 전달한 자가아니라 그의 영혼이 강한 자였습니다.
그는 이게 몸은 연약해서 마지막 죽음의 길을 향해 가고 있을지 몰라도 주님과의 친근함과 주님을 모신 그러한 삶 속에 참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엘리사임을 우리는 기억해 봐야만 될 것 같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지나온 신앙의 길을 걸어왔다면 우리의 마지막에도 이라한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엘리사는 늘 이러한삶을 살아왔고 이것은 그가 가진 전부라고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엘리사는 이러한 주님을 모신 이 골방적인 삶을붙들기에 온 마음을 써 왔던 자인 것 같습니다. 그에게 성령님의 감동은 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과의 친근한 사귐을 늘가지고 살았던 엘리사라고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의 길에 가난은 늘 있었고 그의 길 곁에 환난과 시련과 문제점은 늘있었지만 주님을 모신 이러한 주님과의 가까운 골방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살 때에 엘리사는 부족함이 없었고, 이웃들에게 하나님의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보여주며 길가는 자였음을 우리는 주목해 봐야만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창세기의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의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뜻 가운데 미리 정하여진 길임을 알게 됩니다.
그 수많은 사람 앞에 늘 드러나 있는 요셉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맑고 끝까지 빼앗기지 않는 그리고 지혜롭고 영광스러운삶을 살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종살이와 그 억울한 감옥살이를 통해서 그로하여금 사람 앞에 살지 않고 주님께 속하여주님과 함께 하며, 주님 얼굴 바라보며 주님의 기뻐하시는 돕는자로 사는 이러한 삶이 요셉의 인격 속에 참으로 형성 되기를원하셨음을 주목해야만 될 것 같습니다.
만약에 요셉에게 주님과의 삶이 없을 것 같으면, 주님께 속하고 주님을바라보고 주님을 위한다는 그 가까운 친근한 사귐이 없을 것 같으면 그 억울함과 안타까움 때문에, 장래를 바라볼 때 답답함때문에, 그는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젊은이로 전락되고야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주님과 함께란 그리고주님의 빛 가운데 사는 기쁨과 은혜 속에서 주님의 돕는 자로서 죄수들을 위로해 볼 수 있는 그런 놀라운 삶을 가지고있었습니다. 하나님 앞과 이스라엘 후손들, 그리고 애굽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에서 요셉은 하나님께도 기쁨이 되었고 하나님의백성들에게도 축복을 안겨다 주었으며 그리고 이방인들에게도 많은 축복을 가져다 준 요셉이었습니다.
그것은요셉에게 주님과의 삶이란 골방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골방이 없다는 말씀은 나약한 이웃들과 하나도 다를 바없으며, 우리에게 골방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이 약속해 놓으신 축복과 하나님의 손길은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그 밖에서참으로 피곤하고, 험하고, 지치게 사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우리를가깝게 부르시는 주님, 그 주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서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는 그 값진 삶을살기 위해서 주님과 나만의 사귐이라 말할 수 있는 이 은밀된 골방을 다시 한번 새롭게 만들어야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참으로 축복되게 우리는 이 삶을 이어가야만 될 것 같습니다.
느혜미야는 골방을 갖다보니 그는 주님의 돕는자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았던 사람 같아 보입니다. 그 엄청나 보이는 성을 지어 가는 일도 큰 일처럼 보이지 않고 자기를대적하는 산발랏과 도비야의 그 위협함도 마음속에 크게 두렵지도 아니하고, 밤낮 성실하게 살 수 있는 그러한 은혜가 마음속에밀려온 것은 느혜미야의 골방 때문에 그러한 삶이 왔다라고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가 바벨론에 있을 때도 늘 얼굴이 밝았던이유도 왕이 볼 때에 근심 없어 보이고 참으로 믿음직스러워 보였던 그러한 모습도 골방에서 힘입은 주님의 은혜있음을 우리는기억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보이지 않는 주님과 나 사이의 은밀된 골방을 갖추어 있음으로 주께서 '네 골방으로들어가라'고 말씀하실 때 '주님, 알겠습니다'라고 즉시 말할 수 있는, 그래서 세상이 분노하는 날 주께서 '내 백성아갈지어다'라고 말씀할 때 그 말씀의 의미를 쉽게 힘입을 수 있는 그러한 우리가 오늘, 되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문제가 있지만 우리는 벌써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아는 골방이 있기를 원하고 싶고 주님은 이러한 관계점 속에서 우리를참으로 축복해 주시고자 원하시며 이러한 골방의 축복속에 있을 때 우리가 나아갈 때에는 참으로 복된 자로, 영광스러운 자로 나아갈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주님의 축복된 그러한 섬김도, 다윗의 축복된 그러한 아름다운 생활도, 요셉의 그 복된생활도, 엘리야와 엘리사의 그 값진 일들도, 느헤미야의 그 온전된 아름다운 모습도, 다 이 골방에서 흘러나왔음을 기억해 본다면다시 한번 주님모신 이 골방을 찾아야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잠시 우리는 로마서 6장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도답게 세워주시는 은혜도 골방적인, 저 건너편에 있음을 기억해 봐야만 될 것 같습니다.
나의 육체와 이 세상이란 것에 매여 산다면 우리의 생활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할 수 있는, 하나님 앞에 거룩하다 할 수 있는그러한 삶을 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로마서 6장 말씀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로 그의 무덤에 함께장사지내어진 자로 우리 옛 사람을 넘겨 버리고 이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로 넘겨 버리고, 은밀한 가운데 계신 주님을 옷 입은마음으로 주 앞에 나아갈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산 자란 이 축복된 골방을, 이 축복된 골방의 삶을얻게 될 것 같습니다.
만약에 여러분과 제가 로마서 7장의 4~6절까지의 말씀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주 앞에서이러한 관계를 더듬어 보면 나아간다면, 그리고 여러분이 로마서 8장 이하의 말씀처럼 참으로 이러한 삶에 여러분의 운 관심을두어서 찾고 뿌리 내리는 그러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육신 속에 머물러 있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 살고 있는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자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성령님의 감동하심 속에사는 우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세상이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할지라도 우리는넉넉히 이긴다는 고백을 하기가 어렵지 아니할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러한 일들도 우리의 마음속에는 참으로 가볍게 여겨질 것같습니다. 오늘도 참으로 우리에게 주신이 구원의 생활 전체가 은밀한 골방과 같은 삶임을 알아보아야만 될 것 같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그의 무덤을 통해서 나의 영혼이 예수님 안에 들어가고 그의 무덤으로 말미암아 문 잠그듯이 이 세상에 대해서 죽은자로 간주해 버리고 은밀히 계신 하나님 향하여 우리의 마음이 늘 들어가 있다면 우리의 믿음, 우리의 기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런 것은 늘 살아 있는 참으로 하나님의 은총이 늘 가까이 와 있는 은혜 속에 우리 모두가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만 거룩한 열매가, 의로운 열매가 자연스럽게 돋아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복음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 말할 수 있는이 값진 내용도 참으로 주님께 돌아온 골방적인 위치에 있음을 기억해 보십시다.
아에 못지 않게 우리가조용하게 참으로 주님을 찾는 은밀한 시간 그것도 그러한 삶을 새롭게 정돈하며 이 관계를 더욱더 견고하게 만드는 시간임을 잊어서는인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 은혜 가운데서 이러한 골방이 우리 모두에게 정말 생생한 이 가을이 되기를 참으로 기도드리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강영기 목사님 (진토리 교회) --
평범하게 우리가 살고 있는 방보다는 더 은밀 되게 숨겨진 방. 보통 사람들이 그냥 많이 드나드는 곳보다는, 관심을 두는곳보다는 더 은밀 되게 들어간 곳. 그래서 주님의 백성이면 이러한 곳은 다 있어야 될 것으로 말씀하는, "내 백성아 갈지어다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으로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란 이사야 26장의 말씀처럼 주님의 백성이라면 주님과 나사이에 은밀되게 들어가야 될 곳이 있는 주님과 나만의 그러한 시귐의 곳.
우리의 생활 속에 가장 소중한 보배와 귀중한 물건들을 숨겨 놓는 곳이라 할 수 일는 그러한 골방.
누구나 쉽게 드나들지 않는 곳.
그래서 주님과 나만의 곳이라 말할 수 있는 이 골방.
참으로 우리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에서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에 아버지께 기도 하라"고 말씀하실 때, 우리 각자에게는 나만의 골방이 다 있음을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심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 각자가 나의 주님께 속하여서 나의 주님을 진정한 내 온 마음에 사랑의 주님처럼 모셨다면 그래서 주님께 속한 유다처럼내 온 영혼이 주님과의 사귐을 정말 기뻐한다면, 우리 모두에게는 어느덧 주님과 나만의 골방이 있을 줄 압니다.
그곳이 우리 예수님의 날마다 변화되는 그러한 생활이지만 아버지만을 만나기 위하여서 한적한 곳을 찾아 아버지와 사귐의 시간을가졌던 것처럼 그러한 한적한 곳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또 우리 각자가 삶을 꾸려 가는 그러한 가까운 곳에서 조용하게 주님 앞에나이가서 기도하는 곳도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보이는 유형의 장소는 아닐지라도 날마다 변화되는 생활 속에서 주님께서아버지와의 사귐만은 가지셨던 것처럼, 우리가 아버지께 나아가 가져보는 이러한 사귐만은 각자가 가지고 있어야만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나의 주님께 돌아와서 이제는 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나의 마음의 가장 소중한, 그러한 마음을 가진 그의백성이라고 한다면, 성전에 골방이 딸려 있듯이 우리 각자에게 그러한 골방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하나님을 섬기는 그러한 일과들은 다를지 몰라도 우리 모두는 은밀하게 주님과 나만의 갖는 골방의 삶이 없다면 우리는 그러한 섬김가운데서 쉽게 지치고 말 것 같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평범한 생활, 가족들과 만나는 수많은 일과들 가운데서도 가족의일이 나의 일이 될 수 있는 그런 많은 일들 가운데서도 우리 영혼이 지치지 않은 것은 골방이 있기 때문이며, 우리 영혼이 지치지않는 것은 골방이 있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그 수 많은 일들 가운데서도 우리 영혼이 생기 있게 설수 있는 비결은 골방이 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러한 골방이 있는 자는 언제나 참된 삶의 부요를 가지고 살 것 같고요,나아가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일들을 하기에 앞서서 하나님의 약속하심을 먼저 힘입는 은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정말 골방의 삶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세상이 우리에게 더 갖가지 모양으로 다가온다면 우리는 골방 속에서 주님과 나만의 관계를 더 새롭게, 강하게, 온전하게 묶어 정돈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아간 생활 가운데서라도 주님과 나만의 관계가 뚜렷하게 이루어져 와서 하나님을 예배하듯 살았으면 참 좋을 것 같고요. 주님과 동행하듯 살았으면 참으로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참으로 윤택한 삶을 얻기 위해서는 이러한 골방을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생각하며 찾아보아야만 될것 같습니다. 골방이 없는 성전, 골방이 없는 집, 그것은 참으로 초라한 삶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오늘 나의 주님을 가까이하는 가운데서 이러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골방을 우리 각자가 나의 골방으로 찾아야만 될 것 같습니다.
주께서 은혜 베푸시는 이 귀한 시간, 주께서 우리를 이러한 만남 속에 인도하시고자 하는 시간, 여러분이 나아가서 의롭게 살고 더나아가서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그러한 삶을 살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함이라면 마태복음 6장말씀처럼 나의 골방 안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먼저 있어야만 될 것 같습니다. 내 영혼이 수 많은사람들 잎에 서 있지 아니하고, 참으로 내 영혼이 가련하게 그런 벌거벗은 자처럼 살지 않기를 원한다면 먼저 나의 골방에 들어가서나의 영혼이 내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이가 그분을 나의 가까운 아버지로 나의 하나님으로 가까이 불러 볼 때에, 하나님의가까우심이 여러분에게 놀라운 축복이 될 것이며, 이러한 은혜를 옷 입고 나아갈 때에 수많은 사람이 우리 곁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앞에 있다는 마음이 참으로 많을 것 같습니다.
마치 사도행전 4장 말씀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이 붙들려 제사장 앞에 이끌려 갔지만, 그들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 있다는 이 자유로움 속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증인된 마음으로 우리 주님을 증거했던 것 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이란 것과 나의 주님과 함께라는 것이 참으로 가깝다면 대적들 앞에서도 우리 영혼이 강하고 담대하며영광스럽게 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골방을 통해서 새롭게, 강하게, 온전되게 정돈해 보았으면합니다.
다윗의 골방
우리가 처음 사무엘상 16장에서 만날 수있는 다윗은 들판에서 양떼 지키고 있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주님과 가까운 하나님 앞에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을 그 어린청소년 때에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눈앞에는 특별한 소년으로 보이지 않았을지 몰라도 주님을 참으로 가까이 하는그래서 사자와 곰도 도렵지 않는, 그래서 주님과 함께 성실하게 양떼를 지키고 있는, 주님이 그의 영혼 속에 기쁨이 되고 주님께이끌림 받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다윗임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아버지가 불렀을 때 곧 달려와서 아버지앞에 서는 모습을 보아도, 아버지가 심부름을 보내었을 때 형들을 위해서 전쟁터에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즉시 민첩하게순종하는 모습을 보아서도 그는 하나님과의 가까우심 속에 살고 있는 소년이었습니다.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영혼을지켜볼지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기름부음을 붓고 싶은 그러한 소년이었습니다.
아니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될 것같습니다. 사무엘을 통해서 뚜렷이 보이게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은 것 이전에, 다윗이 주님을 가까이 하고 주님 은혜를마음속에 구할 때에 주님은 그의 영혼 속에 참으로 기름부음으로 많이 응답해 주셨을 줄 압니다. 그래서 다윗의 영혼이 맑았고지혜로웠고 용감하였을 것 같습니다. 다윗의 마음속에는 주님으로 말미암은 지혜로움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으며 하나님 보시기에아름다운 일들이 많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사실 다윗이 들판에서 홀로 양떼 먹이는 그일 자체가 하나님앞에 가까이 와 있는 참 좋은 삶이었습니다. 사람들과의 많은 대화보다는 주님을 가까이 하는,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마음에불러보는, 어느덧 주님은 그의 마음속에 벗이 되어 있는, 이 놀라운 생활 전체가 다윗의 진정한 삶이었습니다.
어쩌면 베들레헴 사람들을 만나기 앞서서, 자기 집에 있는 육신의 부모님들과 형제들을 만나기에 앞서서 다윗은 양떼들 먹이는 것 같아 보여도 그 들판에서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은 그에게 온전된 하나의 삶이었습니다.
그가 주님을 부르면 주님은 그의 마음에 참으로 가까웠겠고 주님은 그의 마음속에 더 없는 큰 기쁨이었으며, 그래서 어느덧 사자와곰이 그에게 닥쳐올지라도 함께 하시는 주님이 담대함의 근원이었음을 그는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마음속에 있던다윗이 어느날 골리앗을 볼 때 두렵지도 않고 골리앗을 향해 나아갈 용기 있는 것은 다윗이 언제나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삶을 살고있었기 때문임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양때 먹이는 생활은 어떤 의미에서 세상에 드러나 있는 삶은아닙니다. 그러한 생활 전체가 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골방의 삶이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윗이 베들레헴 동네에드러나거나, 전쟁터에 드러나서 골리앗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는 것은 드러난 삶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블레셋의 수많은사람들도, 이스라엘 왕과 수많은 사람들도, 눈여겨보는 그 앞에서 다윗은 주님과 함께란 자유로움을 가지고 전투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다윗의 골방은 좁다란 하나의 골방만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가까이 지내고 있는 그 베들레헴 들판의 생활 전체가다윗의 골방이라 말해야 될 것만 같습니다. 이 다윗의 골방은 참된 마음으로 주님을 가까이 하는 다윗에게 있어서는 큰 축복이었을것 같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러한 자에게 오늘도 변함없이 가까운 주님으로 다가와 주실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말씀에서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날도 저 베들레헴 들판에서 밤중에 양떼를 지키는 그 목자들에게 천군 천사들이나타나 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 것 없는 것 같아 보이는 그러한 곳이지만 주님 앞에 양떼를 모아 놓고 조용히 하늘바라보며 주님을 묵상하며 주님 향하는 그러한 마음속에 주님의 임재하심은 참으로 가까울 것 같습니다. 집보다 훨씬 더 넓은광활한 광야일지 몰라도 그곳은 주님을 가까이 모시는 골방이라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마치 우리 예수님의골방이 어두운 밤에 저 빈 들판에 나아가서 기도했던 곳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골방은 꼭 좁다란 장소만을 가리키는 것이아니라 내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나의 주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그러한 은밀된 곳임을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만 될 것같습니다.
사무엘상 18장에서 다윗은 이제 왕궁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그는 백성들 앞에 드나들게 되었고마침내 점점 왕의 사위가 되어감을 보게 됩니다. 그의 삶은 사람들 앞에 많이 드러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때 다윗의이렇다 할 결점을 찾기는 어렵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그러한 삶 속에 머물러 있기를 기뻐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는마침내 사울왕의 핍박 때문입니다만 다시 한번 광야로 이끌려 가게 됩니다.
사무엘상 21장과 22장에서 읽어볼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웃나라 왕 밑으로 피난 가 있는 다윗에게 선지자 갓을 보내어서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땅으로들어가라"는 말씀을 읽게 됩니다. 다윗은 유다땅으로 돌아왔습니다만 그가 머물 수 있는 곳은 유다 수풀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드러난 다윗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안에 숨는 다윗이었음을 주목해야만 할 것같습니다.
낮에도 동굴 속에 숨어 있던 사무엘상 24장 말씀처럼, 그가 밤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의지하는 그 믿음 속에 살던사무엘상 26장 말씀처럼, 궁핍과 가난한 가운데서도 하나님 앞에 있는 그 선한 양심과 깨끗한 마음 때문에 훔치지 못했던 사무엘상25장 말씀처럼, 다윗은 참으로 주님 안에 숨는 마음과 주님 가까이 의지하는 마음과 주님을 끊임없이 기대하며 순종하는 마음으로서 있는 것이 다윗의 인격속에 차츰차츰 익어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게 장차 다윗을 온 유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 세울 것입니다. 그의 생활은 드러나 있는삶입니다. 그에 앞서서 하나님께서 참으로 다윗에게 원하시는 바는 주님 안에 숨고, 주님 얼굴 바라보며 살고, 주님을 의지함으로살고 주님의 인도하시는 빛 가운데서 행하는 그러한 다윗으로 형성시키고자 사무엘상의 그 핍박 가운데서 역사하고 계심을 불 수있습니다. 다윗을 이기게 만들어 주셔도 숲숙을 떠나게 만들지는 않으시는 주님이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이 진정한골방을 주시고자 주님과의 이 골방된 사귐을 인격속에 형성시켜 놓고자 힘쓰시는 주님을 이해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다윗이 다음에 왕위에 올랐을 때 그의 나이가 30살 될 때까지 거치른 광야의 그 어려움을 지나온 것 가운데서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이 무엇이라 말해야만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보물창고였을 것 같습니다. 어느 의미에서 신부가 참으로 신랑만을 사랑해서 들어가는골방처럼 나의 주님과 나만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골방이라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곳에 가까이 갔을 때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예배하는 성전으로 가까이 접근해 갔다라고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서 골방의 의미를 이러한 곳에서 찾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한 골방을 가까이 할 때에 주님은 다윗의 마음속에 참으로피난처가 되어 주셨으며, 의지하는 가까운 주님이 되어 주셨으며, 빛이 되어 주셨으며 다윗으로 하여금 나아갈 바를 비춰주시는참으로 좋은 상담자가 되어 주셨음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골방을 우리 각자가 새롭게 간직하는 것이 참으로 필요할 것같습니다.
다윗이 왕위에 앉아서 비록 그러한 외부적으로 쫓기는 어려움과 곤란이 없어서 어느덧 그 왕위에주저앉아 버렸을 때 그는 골방을 잃어버린 자였습니다. 골방에 들어가지 않은 자였습니다. 그러할 때 그의 영혼은 말라있었으며, 하나님의 빛이 없었으며 그는 도리어 참으로 주님과의 만남을 빼앗긴 자로서 부끄러움과 수치만을 보이는 그러한 다윗이되고만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골방에 들어가서 나의 주님을 가까이 하는 이 가까운 관계를 가지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것인가를 다윗의 일생을 통해서 잠시나마 정돈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님과 나만이 가지는 이 골방, 우리 각자에게 정말새롭게 정돈되어야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창세기에서 읽어 볼 수 있는 야곱의 그 생활가운데서 가장 그의 영혼이 밝고 그리고 하나님의 빛 가운데서 축복스러운 야곱을 보여 준 때가 언제입니까? 그의 청년 때도,장년 때도 아니며 연로한 가운데서 이 땅을 떠나기에 앞서 있는 그러한 야곱이 하나님 앞에 가장 축복스런 야곱으로 드러나 있음을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나에겐 나의 골방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러한 마음 상태를 가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사랑스러웠던 라헬은 이 땅을 떠나갔고 요셉은 빼앗겨 버렸으며, 베냐민은 잃어버림을 당한 야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애굽의 바로왕 앞에 섰을 때는 험난한 나그네길을 걸어간 자로서 자기를 고백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야곱이업습니다만,참으로 마음으로부터 주님을 가까이 해 갈 때에 비록 몸은 노쇠했지만 영혼은 참으로 서 있는 야곱이었으며,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알아 볼 수 있는 야곱이었으며, 주님의 마음을 좇아 자기의 손자 에브라임과 므낫세 위에 축복할 수 있는 그러한 야곱이었음을주목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열 두 아들에 관해서 다가올 일들을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예언하듯말씀할 수 있는 참으로 축복된 자였습니다. 그것은 야곱이 주님과의 관계점 속에서 주님 안에 그리고 주님과의 사귐속에 잠겨 있을때, 비록 거동하기에 불편한 연로한 몸이지만 그의 영혼은 주님을 온 마음으로 가까이 하고자 할 때에, 주님은 그 야곱의하나님으로 서 주셨음을 우리는 알아야 될 것 같습니다. 그의 온 마음이 주님께 돌아와서 마음으로부터 주님을 가까이 하는야곱. 그러한 야곱으로 주님께 매여갈 때 야곱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이는 오늘 삶이 아니라 주님과 나사이는 참으로 '골방 같은 진정한 사랑의 사귐이 있다'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엘리야도 그러합니다.
그가 열왕기상 17장에서 보여주고 있는 주님께 매여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그 누구도, 인적이 없은 그릿 시냇가.
그곳에서 내일을 알지 못한 삶 가운데서 주님과의 사귐속에 매여 있는 엘리야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그릿 사냇가를 엘리야의골방이라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가 얼마동안 시간을 보내고 난 이후에 다시금 보냄 받은 곳 사르밧 과부댁을 생각해보십시오. 그의 마음이 언제나 매여 있어서 함께 살고 있는 분 주님이셨습니다.
그는 주님과 함께란 삶속에서 밤낮 깨어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엘리야의 골방이라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러한 삶이 참으로피곤하게 그리고 무의미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은 주님과 함께란 그러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러할 것 같습니다. 갈멜산에 나아간엘리야가 그 놀라운 하나님의 종으로 수많은 사람들 앞에 생기있게 설 수 있는 것은 은밀한 골방의 생활인 그릿 시냇가나 사르밧과부댁의 그러한 삶 속에서 철저하게 주님께 매임 속에 살았던 엘리야였기 때문에 그러할 것 같습니다.
엘리야에게는 이 골방적인 삶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이 골방의 삶으로 쉽게 돌아가지 아니할 때 이스르엘에서 나약한 자로 드러나고 말았고, 로뎀나무아래 누워있는 연약한 엘리야를 보게 됩니다. 그의 근복적인 이유는 골방이라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쉽게 조그만 문제와 소문에 누워버린 그리스도인. 그리고 평벙한 이방인들보다 나을 바 없는 그러한 삶 속에 참으로 연약함속에 있는 그리스도인. 근본적인 이유는 그릿 시냇가나 사르밧 과부댁에 있던 엘리야처럼 주님과 나만의 삶이라 말할 수 있는골방을 갖지 못했을 때, 이 철저한 골방을 갖지 못했을 때, 강함 속에 사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부끄러움이 없는 자가아니라 유약한 자로 드러나고야 말 것 같습니다.
엘리사의 삶을 보십시오.
그가 주님을 따라 살았던 그 강인한 삶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의 마지막 모습만 잠깐 생각해 보십시오.
열왕기하서 13장에서 요아스 왕이 그에게 다가와서 그를 향하여 참으로 아버지여! 라고 부르짖으며 이제 병든 가운데서 마지막으로 이땅을 향해 길가고 있는 그 엘리사를 향해 울 그 때에도 엘리사는 결코 나약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강함 속에 머물러있는 엘리사임을 우리는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요하스 왕에게 전달해 주었으며 요아스왕이하나님의 축복에 못 미치게 행하여 갈 때 왕을 쏘아볼 수 있을 만큼 강인한 자였습니다. 단순하게 몇 마디 말을 전달한 자가아니라 그의 영혼이 강한 자였습니다.
그는 이게 몸은 연약해서 마지막 죽음의 길을 향해 가고 있을지 몰라도 주님과의 친근함과 주님을 모신 그러한 삶 속에 참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엘리사임을 우리는 기억해 봐야만 될 것 같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지나온 신앙의 길을 걸어왔다면 우리의 마지막에도 이라한 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엘리사는 늘 이러한삶을 살아왔고 이것은 그가 가진 전부라고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엘리사는 이러한 주님을 모신 이 골방적인 삶을붙들기에 온 마음을 써 왔던 자인 것 같습니다. 그에게 성령님의 감동은 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과의 친근한 사귐을 늘가지고 살았던 엘리사라고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의 길에 가난은 늘 있었고 그의 길 곁에 환난과 시련과 문제점은 늘있었지만 주님을 모신 이러한 주님과의 가까운 골방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살 때에 엘리사는 부족함이 없었고, 이웃들에게 하나님의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보여주며 길가는 자였음을 우리는 주목해 봐야만 될 것 같습니다.
여러분!
창세기의 요셉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의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뜻 가운데 미리 정하여진 길임을 알게 됩니다.
그 수많은 사람 앞에 늘 드러나 있는 요셉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맑고 끝까지 빼앗기지 않는 그리고 지혜롭고 영광스러운삶을 살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종살이와 그 억울한 감옥살이를 통해서 그로하여금 사람 앞에 살지 않고 주님께 속하여주님과 함께 하며, 주님 얼굴 바라보며 주님의 기뻐하시는 돕는자로 사는 이러한 삶이 요셉의 인격 속에 참으로 형성 되기를원하셨음을 주목해야만 될 것 같습니다.
만약에 요셉에게 주님과의 삶이 없을 것 같으면, 주님께 속하고 주님을바라보고 주님을 위한다는 그 가까운 친근한 사귐이 없을 것 같으면 그 억울함과 안타까움 때문에, 장래를 바라볼 때 답답함때문에, 그는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젊은이로 전락되고야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주님과 함께란 그리고주님의 빛 가운데 사는 기쁨과 은혜 속에서 주님의 돕는 자로서 죄수들을 위로해 볼 수 있는 그런 놀라운 삶을 가지고있었습니다. 하나님 앞과 이스라엘 후손들, 그리고 애굽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에서 요셉은 하나님께도 기쁨이 되었고 하나님의백성들에게도 축복을 안겨다 주었으며 그리고 이방인들에게도 많은 축복을 가져다 준 요셉이었습니다.
그것은요셉에게 주님과의 삶이란 골방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골방이 없다는 말씀은 나약한 이웃들과 하나도 다를 바없으며, 우리에게 골방이 없다는 말은 하나님이 약속해 놓으신 축복과 하나님의 손길은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그 밖에서참으로 피곤하고, 험하고, 지치게 사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오늘도 우리를가깝게 부르시는 주님, 그 주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서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는 그 값진 삶을살기 위해서 주님과 나만의 사귐이라 말할 수 있는 이 은밀된 골방을 다시 한번 새롭게 만들어야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참으로 축복되게 우리는 이 삶을 이어가야만 될 것 같습니다.
느혜미야는 골방을 갖다보니 그는 주님의 돕는자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았던 사람 같아 보입니다. 그 엄청나 보이는 성을 지어 가는 일도 큰 일처럼 보이지 않고 자기를대적하는 산발랏과 도비야의 그 위협함도 마음속에 크게 두렵지도 아니하고, 밤낮 성실하게 살 수 있는 그러한 은혜가 마음속에밀려온 것은 느혜미야의 골방 때문에 그러한 삶이 왔다라고 말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가 바벨론에 있을 때도 늘 얼굴이 밝았던이유도 왕이 볼 때에 근심 없어 보이고 참으로 믿음직스러워 보였던 그러한 모습도 골방에서 힘입은 주님의 은혜있음을 우리는기억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보이지 않는 주님과 나 사이의 은밀된 골방을 갖추어 있음으로 주께서 '네 골방으로들어가라'고 말씀하실 때 '주님, 알겠습니다'라고 즉시 말할 수 있는, 그래서 세상이 분노하는 날 주께서 '내 백성아갈지어다'라고 말씀할 때 그 말씀의 의미를 쉽게 힘입을 수 있는 그러한 우리가 오늘, 되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문제가 있지만 우리는 벌써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아는 골방이 있기를 원하고 싶고 주님은 이러한 관계점 속에서 우리를참으로 축복해 주시고자 원하시며 이러한 골방의 축복속에 있을 때 우리가 나아갈 때에는 참으로 복된 자로, 영광스러운 자로 나아갈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주님의 축복된 그러한 섬김도, 다윗의 축복된 그러한 아름다운 생활도, 요셉의 그 복된생활도, 엘리야와 엘리사의 그 값진 일들도, 느헤미야의 그 온전된 아름다운 모습도, 다 이 골방에서 흘러나왔음을 기억해 본다면다시 한번 주님모신 이 골방을 찾아야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잠시 우리는 로마서 6장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도답게 세워주시는 은혜도 골방적인, 저 건너편에 있음을 기억해 봐야만 될 것 같습니다.
나의 육체와 이 세상이란 것에 매여 산다면 우리의 생활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할 수 있는, 하나님 앞에 거룩하다 할 수 있는그러한 삶을 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로마서 6장 말씀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로 그의 무덤에 함께장사지내어진 자로 우리 옛 사람을 넘겨 버리고 이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로 넘겨 버리고, 은밀한 가운데 계신 주님을 옷 입은마음으로 주 앞에 나아갈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산 자란 이 축복된 골방을, 이 축복된 골방의 삶을얻게 될 것 같습니다.
만약에 여러분과 제가 로마서 7장의 4~6절까지의 말씀처럼 새로운 마음으로 주 앞에서이러한 관계를 더듬어 보면 나아간다면, 그리고 여러분이 로마서 8장 이하의 말씀처럼 참으로 이러한 삶에 여러분의 운 관심을두어서 찾고 뿌리 내리는 그러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육신 속에 머물러 있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 살고 있는자일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자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성령님의 감동하심 속에사는 우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세상이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할지라도 우리는넉넉히 이긴다는 고백을 하기가 어렵지 아니할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러한 일들도 우리의 마음속에는 참으로 가볍게 여겨질 것같습니다. 오늘도 참으로 우리에게 주신이 구원의 생활 전체가 은밀한 골방과 같은 삶임을 알아보아야만 될 것 같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그의 무덤을 통해서 나의 영혼이 예수님 안에 들어가고 그의 무덤으로 말미암아 문 잠그듯이 이 세상에 대해서 죽은자로 간주해 버리고 은밀히 계신 하나님 향하여 우리의 마음이 늘 들어가 있다면 우리의 믿음, 우리의 기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런 것은 늘 살아 있는 참으로 하나님의 은총이 늘 가까이 와 있는 은혜 속에 우리 모두가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만 거룩한 열매가, 의로운 열매가 자연스럽게 돋아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복음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 말할 수 있는이 값진 내용도 참으로 주님께 돌아온 골방적인 위치에 있음을 기억해 보십시다.
아에 못지 않게 우리가조용하게 참으로 주님을 찾는 은밀한 시간 그것도 그러한 삶을 새롭게 정돈하며 이 관계를 더욱더 견고하게 만드는 시간임을 잊어서는인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 은혜 가운데서 이러한 골방이 우리 모두에게 정말 생생한 이 가을이 되기를 참으로 기도드리고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강영기 목사님 (진토리 교회) --
# by | 2007/04/29 18:44 | 생명의 양식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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